
사요나라 이츠카
만원이란 돈의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1) 외부에 나가서 식사 한 끼 정도의 값 (요즘 물라가 많이 올라서 다들 아시리라)
2) 편의점 가서 도시락 2개 정도 살 수 있는 돈.
3)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돈
4) 어떤 사람에게는 상황에 따라 그냥 번거로운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하는 돈
오늘은 위의 4가지 중에 3번과 4번 사이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새삼 블로그도 한 달에 한번 포스팅 하는 놈이 마치 매일 하는 듯 폼 잡는 염치하고는..)
내가 일하는 셀프주유소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셀프다.
셀프라는 게, 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간편하고 누구에게도 터치 받지 않고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반면에 나이가 많아서, 아님 새로운 조류인 인공지능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매우 번거로운 서비스다.
서비스라고?
무엇을 서비스를 한단 말인가? 라고 누가 묻는 다면 단 한가지로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건비가 싸지니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설이니 친절도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 주유소는 그런 측면에서는 서비스 (가격 측면에선) 매우 우수한 주유소다.
근방 모든 주유소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의 기름을 판매 하는 곳이기에. 비가 오나 폭설이 쏟아져도 보통 400명에서 500명 가까운 인원이 매일 들락거린다.
100인 100색이라고, 여러 부류의 인원이 들락거리다보니 사무실에 앉아서 CCTV로 모니터를 줄기차게 들여다보다 손님이 호출을 하면 나가서 해결하는 내 일과는 어찌 보면 단조롭기도 하다.
외형상은 그렇다.
깊은 속내를 들어가 보면 세상사의 이치가 그렇듯이 남의 돈 먹기 쉽지 않다가 입증되는 곳이 내가 하는 일이다.
만원에 관한 이야기. 시작은 이렇다.
새벽이다.
나 같은 인간이 마징가제트가 아닌 이상 근무자들은 계약서대로 18시간 근무하고 6시간 휴식 (말 그대로 쪽잠자고) 하루 마감을 끝내고 교대 근무하는 일과다.
(모든 일이 그렇듯 서류대로 지켜지는 일은 없다)
그 휴식시간 6시간 동안에 말 그대로 손님이 혼자 주유하다 발생하는 일 (즉, 주유 중 문제가 생겼을 경우)처리하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새벽 3시경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어떤 때는 잠결에 못들은 경우도 있고 아님 반대로 들려서 졸린 상태로 주섬주섬 나가보면 기름이 안 들어간다던가 하는 이유로 호출하는 경우다.
(거의 100% 손님이 조작을 잘 못하는 경우다)
그런 상태로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잔건지 그냥 시체처럼 누워있다 일어난 건지 비몽사몽간이다.
고민 끝에 안내문을 써 붙여서 ‘현금 주유를 하시다 지폐가 걸리거나 그러면 6시 이후에 언제든지 오시면 환불해드립니다’라고 써 붙이고 잠을 자니까 그나마 조금 낫긴 하다.
(그것마저 무시하고 문 입구에다 화풀이 하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주유기에 지폐가 걸리는 경우는 대게가 약간 찢어진 돈을 넣는 경우다.
걸리게 되면 열쇠로 열기 전까지는 돈을 빼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느 새벽 5시경 (굳이 글을 쓰는 오늘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주유를 하러 온 용감한 아주머니가 물욕이 생긴 건지 아님 뭔지 모르지만 걸려있는 지폐를 반강제로 빼내어 주머니에 쓱싹하시고 자기 카드로 주유를 하고 사라졌다.
그 여자 분은 용감했는지는 몰라도 사방에 CCTV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그 중 CCTV가 많기로 소문난 우리 주유소 (심지어 내가 잠든 모습까지 친절하게 촬영해주는 그런 곳)라는 걸 간과한 것 같다.
유난스레 무감각한 근무자가 아침 교대시간에 무엇에 홀렸는지 열심히 CCTV를 돌려보며 찾아내고 있었고 그 여자 분이 쓱싹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잡아내고 있었다.
길에서 주운 돈을 그냥 가져가면 점유물 이탈횡령죄, 강제로 남의 소유물을 편취하면 절도죄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강압을 하면 강도죄가 될 수도 있는 죄들) 성립된다는 걸 모른 건지 그녀는 지금쯤 그 만원으로 무언가에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돈이 지폐에 걸려 찾으러 온 피해자가 또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후좌우 설명을 듣고는 여하간 귀속책임은 주유소에 있으니 주유소에서 물어내라는 게 요구사항이었다.
20여 분간 공교롭게 아무 죄도 없는 나는 단순히 그날 근무한다는 이유로 많이, 아니 몹시 시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만원이니까 그냥 지갑에서 개인 돈 꺼내서 주고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처리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딜레마에 빠졌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어제 근무자가. CCTV가 알고 있었다.
전에 비슷한 일(자기가 기름 넣고 미터기 안 올라간다고 항의해서 새벽녘에 돈 만원 뜯어간 양아치- 그 일이 알려져서 회사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점 -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정비공장에 가서 검사받고 와서 얘기하라는 지침을 받은 후 - 나는 사소한 금액이라도 결국 공론화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가져간 만원으로 무언가 충족감을 느끼고 있을 (공돈 생겼다며)여자분 에게 화가 났고 무엇보다 회사 일인데 내 돈을 변상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만원 때문에 경찰에 신고해서 조서꾸미고 하는 일이 번거롭다는 피해자 손님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만일 조서를 꾸미면서 피해금액이 만원이라면 경찰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괜한 일 만들어서 번거롭게 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할지 안할지는 모른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그것도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 경찰이 아닌 사건에 찌들어서 피곤해있는 고참급 형사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일들 아닐지)생각 때문에 피해자는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었고 나는 회사에, 떠넘기기 위해 월요일까지 (주말에 다들 쉬니까)시간을 벌어야 했다.
천하의 말 빨을 자랑한다는 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찌저찌 돌려보내고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 선에서, 아니 돈 1원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같이 일하는 중국 사람은 택도 없는 일이라고 뒤로 빠져버릴 거고, 처리할까. 아님 회사에서 만일 우리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밀어버리면 (과거의 사례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결국 우리가. 아니 그나마 한글을 많이 아는 (?) 내가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위임장을 컴퓨터로 작성하고 (돈 만원 우선 피해자 돌려주고, 위임받아서 신고를 하기 위해서)프린트로 출력을 하고 회사의 처분을 기대하고 있다.
만원의 의미가 상대에 따라 어떤 현황에 따라 이렇게 사람을 번거롭게, 곤혹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해 들어 액땜했다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하다 블로그에 글을 남겨본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하다
'등짝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로 돌아가다! (0) | 2021.05.03 |
---|---|
다시 시작하면서.. (0) | 2021.04.17 |
2020! 아듀! (0) | 2020.12.30 |
이 지겨운 놈의 게으름! (0) | 2020.07.29 |
새 식구! (0) | 2020.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