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러시아 군가로 한다.
귓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칼은 방송에서 세프들이 사용하는 그런 류의 칼을 쓴다.
요리 도사 여친에게 조언을 받았지만 그녀의 조언은 너무 내게 비현실적(?)이라 만개의 레시피란 앱에서 주로 정보를 얻어 활용한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오전 아침 퇴근 길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준비한다.
'목살 스테이크'
이걸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낑낑댄다.
지난번 만들었던 샤브샤브의 소스가 영 아니라서 소스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기 위해 소스들을 상세히 들러본다.
한참 가야 하는데..가방이 꽤 무겁다.
그냥 사먹어도 되는데..왜 이리 복잡하게 준비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이렇게 답하기로 한다.
'잘 먹기 위해서.."라고.
요리(?)를 시작한다.
음악 GO!
# 지난 번 사놓은 오이가 냉장고에서 썩기 시작해서 이왕 손댄 길에 골뱅이 무침을 더불어 한다.
마트에 가면 늘 불만인게..자기들 편한 기준으로 판다는 점이다.
어떤 마트에선 그나마 낱개로 팔기도 해서 내가 필요한 만큼 사면 되지만 봉지에 몇개를 담아 가격을 매겨 파는 이 마트는 그게 늘 불만이다.
1,900원에 10개가 뭐람!
이걸 어떻게 한번에 다 해먹어야 할지 ㅜ.ㅜ
조금만 하고 나니까 결국 썩기 시작한다.
큰 맘 먹고 전체를 다 무치기 시작한다.
며칠은 고사하고 한달간 먹게 생겼다.
근데..골뱅이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그렇게 힘들게 음식을 하느냐고 누가 다시 묻는다면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얼굴 살이 많이 빠져서 그렇다고..잘 못먹어서 몸이 말이 아니라고.."
#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살이 많이 빠졌다고 걱정을 한다.
잠을 잘 못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게 먹으니까 그런 거라고 조언을 한다.
거울을 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이 빠진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넌 도대체 누구니? "
얼굴 색 좋다는 소리를 듣던 내 모습은 어디가고..점점 나이 들어가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래 결심했어!
이제부터 잘 먹기로 한다.
걷는 건 하루에 2만보를 걸으니 이젠 얼굴에 단백질을 좀 더 늘리기 위해 잘 안 먹던 육류와 생선류를 일주일에 두번씩 먹는다.
혼자 요리하기 쓸쓸하니까 신나고 활기찬 러시아 군가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칼도, 도마도, 재료도 좋은 걸로 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오래 살기 싫어 방치해도 내 맘대로 죽는 것도 여의치 않다면 그냥 남은 삶을 건강하게 살기로 한다.
혼자 밥을 해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디테일 하게 살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는 걸.
무늬만 남자지 사실상 살림하는 여자주부들 처럼 아주 섬세하게 살림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생활이 엉망이라는 거.
언제부터인지, 재활용 쓰레기 봉투 확보하는 것, 마트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재료 구매하기. 고정적으로 구매를 할거면
회원 가입을 해서 포인트인지 뭔지 쌓아서 나중에 활용하기. 살림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들 (미림, 돈까스 소스. 까나리 액젖, 키친타월..기타 등등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각종 재료..)을 구비해놓고 그때 그때 요리를 만들지 않으면 완벽한 요리는 안된다는 것
요리 솜씨는 그 다음 문제라는 것!
가계부를 써가며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도록 노력하고, 그렇다고 너무 팍팍하게 쪼들리며 살다가지는 말것!
막상 그렇게 결정하고 실천은 하고 있지만 참 피곤한 생활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자가 해주는 밥을 어머니 말고,단 한번도 내 집에서 얻어먹어 본적이 없는 내 인생도 참 박복한 삶인가
보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나는 오늘도 잘 하지 못하는 요리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부산을 떨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
설거지가 남았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 (폴 발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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